흑인 공작과 리젠시 로맨스

19세기 영국 런던에 흑인 공작이라니? 
글을 쓰는 이유는 90% 쯤은 넷플릭스의 2020년작 ‘브리저튼’ 시리즈 때문이다.  인기 역사 로맨스 작가 줄리아 퀸의 2000년작 ‘공작의 여인(Duke&I)’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크리스마스에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넷플릭스 인기 순위 1위에 오를 정도로 높은 화제성을 자랑한다.  문제는 이 작품의 가장 큰 화제성이 작품의 질이나 배우들의 연기가 아니라 ‘블랙 듀크(Black Duke)- 흑인 공작’이란 점이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하 PC)의 본고장인 미국에서조차 피부색 논쟁이 불러오는 위험성을 감수하며 흑인 캐스팅에 강한 반발을 하는 것은 드라마의 시대적 특수성 때문이다.  이 작품의 시대 배경은 리젠시(Regency : 섭정) 시대라 불리는 영국의1813년이다.  원작에서는 모두 백인이었으나 드라마화 되면서 흑인 역으로 탈바꿈한 일명 블랙워싱이다.

드라마 제작사 숀다랜드 측은 블랙 워싱에 개연성을 부과하기 위해 조지 3세의 부인이자 섭정 황태자 조지의 어머니인 샬롯 여왕이 흑인이라는 역사계의 음모론까지 가져왔다. 샬롯 여왕의 아프리카계설은  흑백 혼혈인 메건 마클이 공작 부인이 되면서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  주장으로 샬롯 여왕의 500년쯤전 조상에 무어인 여성 – 그것도 아프리카계 무어인인지 확실하지 않은  – 있다고 샬롯 여왕은 아프리카계라는 다소 황당한 내용이다.

런 블랙 워싱으로 브리저튼은 분명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극임에도 불구하고 평행 세계 영국을 무대로 한 대체 역사물이 된 것이 원작팬들로서는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다. 당시 영국에는 삼만명쯤 되는 흑인이 살았다고 하지만, 상위 귀족의 수는 삼백여명이고 – 공작은 18명, 후작은 17명, 백작은 100명,  자작은 22명, 남작 143명 – 제인 오스틴의 젠트리 계급 등장인물들이 호들갑을 떨었던 하위 귀족인 준남작과 기사를  포함해도 귀족 흑인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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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 왕비의 연도별 초상화

블랙워싱 찬성파는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미디어의 예를 들며 아랍인이나 유대인이 등장해야 마땅한 시대극의 주인공은 항상 앵글로색슨 백인이었고 리젠시 역사 로맨스 장르 역시 현대 여성의 입맛에 맞게 변형된 일종의 판타지인데 시대적 요구로 흑인 공작이 등장하는 게 뭐 대수냐고  말한다. 일견 타당성 있는 주장이다.

대체 원작 팬들은 대체 왜 이렇게 반발하는 것인가?
작 소설가인 줄리아 퀸은 한 인터뷰에서 다인종 캐스팅에 대해서 강한 지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팬들은 반발한다.  다시 리젠시 역사 로맨스 장르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원작은 리젠시 역사 로맨스다.

영국 리젠시 시대는 영국 왕 조지 3세가 유전병 병력으로 인한 정신병이 심해져 통치가 불가능해지자 아들인 황태자 조지 – 훗날 조지 4세 – 가 섭정을 한 기간이다.  1811년부터 1820년까지 9년 동안의 이 짧은 기간이 로맨스 소설 장르의 핵심 배경이 된 것은 단순하게도  로맨스 소설 장르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제인 오스틴과 실질적인 리젠시 로맨스 창시자인 조제트 헤이어가 그 시대를 소설의 무대로 삼아서이다.

1920년대부터 소설가로 활약한 조제트 헤이어는 제인 오스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 기본 뼈대 – 시대적 배경, 오스틴 풍의 어투, 위트와 플롯을 가져와 고딕 장르와 결합해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창조했다.  부르주아 계급인 젠트리가 주인공이었던 제인 오스틴의 작품과 달리 조제트 헤이어의 주인공은 귀족층이다. 우리가 역사 로맨스 소설에서 가장  쉽게 접하는  클리세 -가문을 배신한 남주인공, 추문에 휩싸인 여주인공,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편의성 결혼, 모든 오해를 풀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 해피엔딩까지 모두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됐다.  무엇보다 조제트 헤이어가 역사 로맨스 소설 장르에서 한 가장 큰 일은 리젠시라는 하나의 정교한 판타지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파멜라 레지스의 ‘A natural history of the romance novel’의 주장에 따르면 제인 오스틴 시점에서 ‘오만과편견’은 현대 소설이다. 제인 오스틴은 리젠시 시대를 살았으니 당대 독자들에게 굳이 리젠시 시대에 대해 세밀한 묘사를 할 필요성이 없다. 역사 소설을 쓰는 조제트 헤이어의 입장에서는 독자들에게 리젠시 시대에 대해 이해를 시켜야 한다. 그래서 조제트 헤이어는 런던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 대학교로 달려가 리젠시 시대 연구에 매진한다.   풍습,어투, 단어, 의상, 정치, 역사, 전쟁, 지리등에 대해 빠짐없이 연구한 그녀의 열정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됐고 -특히 상류층의 문화인 런던 시즌,말타기, 공원 산책, 티파티, 무도회등등 생활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리젠시 장르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또 하나, 그녀의 작품의 인기 요인은 혁신적인 캐릭터였다. 역사 로맨스 소설이지만, 등장인물의 사상은 조제트 헤이어가 산 20세기 현대인에 가까웠다. 이후에도 이 두 가지 요소- 정교한 리젠시 시대 재현과  현대적인 관점의 주인공은 리젠시 장르의 뿌리가 됐다.

수 많은 모방작들이 뒤를 이었고 출판사들은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 로맨스 소설만 출간하는 카테고리 로맨스 라인을 만들어 책 표지에 ‘리젠시 로맨스(Regency Romance)’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70년대 후반 시작된 시그넷 출판사의 ‘ 시그넷 리젠시 로맨스’와  85년부터 켄싱턴 출판사에서 출간 된  ‘제브라 리젠시 로맨스’가 양대 산맥으로 메리 블로그,칼라 켈리,로레타 체이스,조 베벌리,메리 조 푸트니 등이 당시 대표 작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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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을 고려하여 리젠시 로맨스에는 성적인 묘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성적인 묘사 없이 팽팽한 성적인 긴장감을 끌어내는 것이 이 장르의 매력이다.

1972년 캐슬린 E.우디위스가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인 역사 로맨스를 탄생시키면서 세상이 달라진다. 최초의 보급판 싱글 타이틀 역사 로맨스인 ‘The Flame and The Flower’의 대략 줄거리는 이렇다.

19세기 초 영국 런던에 사는 고아인 여주인공(헤더)은 강간당할 위기에서 상대방을 살해하고 도주하다. 부둣가에서 정처 없이 헤매던 헤더는 그녀를 매추부로 오해한  남주인공(브랜든)에게 강간당한다. 남주인공은 곧 여주인공이 숫처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거리에서 처녀성을 팔았다며 비난하고 여주인공은 역시 모든 것이 남주인공의 오해에서 비롯됐다며 눈물을 흘린다.

남주인공은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부유한 정부(情婦) 자리를 제안하지만,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의 곁을 떠난다. 얼마 후 여주인공은 자신이 임신을 사실을 알게 되고 치안판사는 남주인공은 잡아다 해결책으로 결혼을 제시한다. 두 사람은 편의상 결혼을 하고 남주인공이 사는 미국으로 간다. 미국에는 남주인공의 약혼녀가 있었고 평소 그를 연모하던 수많은 동네 처녀들까지 합세해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이간질한다. 과거 여주인공의 살인 사건을 아는 남자가 나타나 여주인공의 돈과 육체를 원한다.

이 소설이 현대적인 에로틱 역사 로맨스 소설 장르 일명 ‘보디스 리퍼’ 의 시작이다. 훗날 페미니스트 진영에게 강간 문화를 정당화시킨다며 비난을 받았고 작가들의 자정적 활동으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복잡한 서사와 화끈한 성적 묘사로 단숨에 업계 최고의 장르로 뛰어 오른다. 70년대 ‘그레이의 50가지 비밀’이라 할만한 사건이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리젠시 로맨스 업계도 좀 더 에로틱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단선적인 스토리에 과감한 성적 묘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독자들 사이에서 토론이 벌어졌다. 같은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기존의 리젠시 로맨스와 이 새로운 현대적 에로틱 역사 로맨스는 별개의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기존의 리젠시 로맨스 소설은 트렌디셔널 리젠시 로맨스(Traditional Regency Romance : 전통적 리젠시 로맨스) 라 칭하고 후자는 리젠시 히스토리컬 로맨스(Regency Historical Romance : 리젠시 역사 로맨스)라고 나누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트렌디셔널 리젠시 로맨스는 90년대 중,후반까지 흥하고 2000년대 들어서 쇠퇴하기 시작해 중반에 들어서자 장르가 사장됐다. 리젠시 카테고리 로맨스를 출간하던 시그넷과 제브라도 라인을 단종시켰다. 대표 작가들도 모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리젠시 히스토리컬을 쓰기 시작했다.  2010년대 이후 리젠시 소설에 수여하던 상 부분도 사라졌고 일반적인 독자들은 엄격한 구분 없이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 리젠시 로맨스이고 아니면 히스토리컬 로맨스(역사 로맨스)라 통칭한다. 오랜 로맨스 소설 팬들은 제인주의자(제인 오스틴의 골수팬)만큼 여전히 이 장르 구분에 엄격하다.

다양성의 해답은 블랙워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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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바셋(레지 장 페이지) ©넷플릭스

플릭스 ‘브리저튼’ 시리즈로 돌아가 보자. 정교한 리젠시 시대 재현이야말로 이 장르의 판타지의 핵심이다. 신사 계층도 아니고 흑인 공작이라니 장르의 근간을 허무는 중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혹자는 장르의 시조인 제인 오스틴의 미완성 유작인 ‘샌디턴’의 예를 들며 샌디턴에도 부유한 흑인 상속녀가 등장하는데 21세기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유연하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샌디턴에 흑인 상속녀(아프리카계 흑인은 아니다)가 등장하긴 한다. 분명 십만 파운드의 거금을 지닌 미스 램(Miss Lambe)은 서인도 출신의 물라토(흑백 혼혈을 지칭)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젠트리 계급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왕족,귀족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더욱이 미완성 소설이라 제인 오스틴의 어떤 의도성을 가지고 그녀의 캐릭터를 창조했는지도 영영 알 수 없다.

작가인 줄리아 퀸은 멀티컬쳐 캐스팅에 대단히 만족감을 드러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줄리아 퀸이 이 장르에서 혁신성을 발휘한 적이 있었는지 반문하고 싶다.  여느 작가보다도 열심히 최상류층 백인 남녀 귀족층만을 등장시켜 사교계 인형 놀이를 한 장본인이다.

제작사가 진정한 다인종 사회 리젠시 시대를 창조할 생각이었다면 블랙 워싱이 아니라 처음부터 피부색에 신경을 쓰지 않는 흑인이 백인 역할을 하고 황인이 흑인 역할을 해도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칼라 블라인드 캐스팅(Color-blind casting) 이 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다양한 인종의 브리저튼 남매까지는 무리였을까? 백인부부의 자녀는 백인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다.

사를 왜곡하는 무리수까지 두며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백인이 주도하는 이야기에 다른 인종을 밀어 넣는 것이 다양성의 척도라는 편향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블랙 워싱이야말로 사람들을 분열시킨다. 검은 공작에 환영하는 측에서조차 흑인 배우가 캐스팅 됏지만, 흑인의 정체성이 없는 백인인 척 하는 연기를 한다며 또 다른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 유색 인종이 차별받은 역사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이런 식의 역사 왜곡은 의도적인 역사 지우기라며 반발한다.

좀 더 정치적인 올바름의 관점으로 보자면 대부분의 리젠시 역사 로맨스 소설은 사라져야 한다. 블랙워싱으로 장르를 탈색한다고 문제점은 사라지지 않는다. 계급 간의 착취와 만연한 차별 같은 역사적인 사실은 모두 드레스 밑에 쓸어 넣고 무도회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왕자님이 흑인이라고 해서 모두의 이야기가 되진 않는다.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이런 억지춘향이식 각색보다는 처음부터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이 보장되는 이야기를 새로 발굴하는 것이 더 나은 해결책이다.

리젠시 사회상에 대하여

섭정 시대는 귀족을 제외한 일부 특권 계층을 제외하고는 그리 좋은 시절이 아니었다. 막대한 산업화의 영향 속에서  나폴레옹과의 전쟁,흉작으로 인한 소작인들의 도시 유입과 도시 인구 증가에 따른 슬럼가 형성등 혼란이 극에 달했다. 고도로 구조화된 계층 사회에서 귀족 계층은 식민지에서 유입된 부로 사치와 방종을 일삼았고 젠트리는 귀족 계층을 모방하려 애썼다.  귀족 계층은  자신들만의 매너와 패션,예의를 만들어 아래 계층과의 차별성을 형성했으며  귀족 계층을 모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젠트리 계층은 도덕성을 앞세웠다.  교양 넘치는 쾌락주의자였던 섭정 황태자 프리니는 패션,건축,문학,미술,음악 등 다방면의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사회적으로 화려한 축하 행사를 개최해 영국의 미니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섭정 황태자 조지

섭정 황태자 조지는 한 나라의 국왕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지기에는 어울리지지 않는 게으르고 이기적인 한량이었다.  그는 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 제인 오스틴의 ‘엠마’를 자신에게 헌정케 했고, 바이런(Byron, 6th Baron : 영국의 시인)과 스코트(Walter Scott : 영국의 시인, 소설가) 을 후원했으며 화가 로런스(Thomas Lawrence)의 모델이 되어 주고 베토벤에게 200파운드를 하사 하는 등의 각종 문화장려정책을 베풀었다.

친구인 건축가 존 내시에게 리젠트 스트리트, 리젠트 파크를 건축하게 했으며  버킹검 궁전의 개축, 윈저성의 수축도 모두 섭정 황태자의 주도하에 이뤄진 결과물이다.  또 다른 친구인 신사 보 브루멜과 어울리며 패션과 클럽 문화도 주도했다.  영국 최초의 신사이자 유럽 최고의 멋쟁이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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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4세 – 미화된 모습과 달리 110kg에 이루는 상당한 비만이었다.

섭정 황태자는 어린 시절부터 생활이 방탕하고 절제를 몰라 세금을 낭비하고 수 많은 정부를 뒀다.  여배우 메리 로빈스, 비밀 결혼을 감행한 마리아 피처허 버트(두번 결혼한 전력이 있고 국법에서 결혼을 금하는 가톨릭 교도), 직업 창부였던 그레이스 앨리엇(황태자의 사생아를 낳았다), 저지 백작 부인 프랜시스 빌리어스 (그녀의 주도로 사촌과 결혼을 감행했다) , 하트퍼드 후작부인 이사벨라 앤 세이무어 콘웨이, 커닝햄 후작부인 엘리자베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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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캐롤라인 왕비,오랜 정부 마리아 피처허버트,하트버드 후작부인

끔찍한 도박꾼이자 유흥 중독자였던 황태자는 65만파운드의 채무를 청산하기 위해  의회와 합의하고 1785년에 사촌인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녀 캐롤라인과 결혼식을 올린다.  26살의 투실투실한 독일 여성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황태자는 딸 샬럿 공주를 낳고 결혼한 지 1년만에 왕비와 별거하고  왕비는 연간 3만5천 파운드를 수당으로 받는 조건으로 영국을  떠나 6년동안 유렵 대륙을 떠돈다.

황태자는 1820년 자신의 대관식에 왕비를  참석시키지 않겠다고 해 또 한번 파문을 일으킨다.  캐롤라인 왕비는 자신의 권한을 주장했고 조지 4세는 이혼을 원했고 의회에 캐롤라인의 간음죄를 물어 이혼을 정당화하려는 법안을 상정케 한다. 캐롤라인 또한 문란한 사생활로 남편과 쌍벽을 이루고 있었기에 쉽게 이혼을 이뤄질 줄 알았으나 당시 정부를 미워한 대중들이 캐롤라인 왕비편을 들면서 왕부부의 이혼은 법정에 선다.  토리와 휘그의 대리 법정 싸움은 왕비의 간발의 승리로 끝나 이혼이 성사되지 못했다. 왕비는 1821년 7월에 열린 왕의 대관식 행사장 앞에서 저지 당해고  3주후인 1821년 8월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1830년 소시지 처럼 뚱뚱한 몸의 조지 4세가 각종 비만 합병증으로 사망하면서 시대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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