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 로맨스의 수작(秀作)’ 화홍 1부

‘화홍 1부’ 이지환

화홍 1부
Title: 화홍 1부
Author:
Genre:
Series:
Publisher:
Published: 2004
화홍
  1. 화홍 1부 : 초련,2004,청어람
  2. 화홍 1부: 청실홍실,2004,청어람
  3. 화홍 1부 : 오작교,2004,청어람
  4. 화홍 2부 : 연정만리,2010,청어람
  5. 화홍 2부 : 월하정인,2010,청어람

서양 로맨스 장르에서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역사 로맨스다. 그리고 이 역사 로맨스는 그 뒤 여러 가지 하위 장르로 특성화 되기 했지만, 그 중에서도 기사도를 중심으로 한 중세 로맨스와 19세기의 낭만적인 연애풍속도를 그린 리젠시(섭정) 로맨스가 양 기둥이다. 문제는 로맨스 장르가 원래 서구에서 발생한 외래 장르이다보니 시대적,문화적 차이가 경미한 현대 로맨스의 경우는 그렇다해도 역사 로맨스의 경우에는 중심이 되는 서구권의 기사도 문화나 연애 풍속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양 작가들이 역사 로맨스라는 장르를 발달시킬 수 있었든 결정적인 요소로는 주요 소설적 무대가 되는 영국(이나 유럽)은 봉신제에 기반을 두고 있어 후국,백국,공국등의 무수한 지방 정권 중 한 곳을 선택하여 공주와 왕자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한편의 동화(Fairy Tale)를 직조해 낼 틈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통치 역사는 강력한 중앙 집권제에 기반을 두고 있어 왕자(혹은 공주)의 사랑을 그리려면 역사 자체를 세심하게 뜯어 고쳐야 할 뿐 만이라 비슷한 시기의 우리네는 유교가 지배 논리이다 보니 서양 귀족과 견줄만한 위치인 왕족,양반 가문의 자제들을 자유롭게 연애 시키는 풍속이나 반상간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풀기가 쉽지가 않음이겠다. 결국 국내 로맨스 작가들은 역사적 사실이 뚜렷하지 않은 시대를 주무대로 삼거나 아니면 판타지와 이종 교배해 기존 역사 소스를 가져다가 하나의 새로운 나라를 창조하는 일종의 미봉책에 이르게 된다.

이지환의 《화홍》에는 국내 로맨스 작가로서 서양 역사 로맨스를 소화 해내야만 하는 고민이 많이 담겨있다. 작가는 단국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창조해 내는데 사실 이름만 다를 뿐 조선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가상의 실록 단국실록(조선왕조실록)에 있는《을사의 화》의 사건 전모로써 청빈한 선비의 외동딸 소혜가 15세에 간택되어 19세의 젊은 왕 욱제와 혼인이 하게 되는데 욱제에게는 이미 희란이라는 간부가 있었으니 소혜는 뒷방 중전 신세가 되어 눈물로 지새다가 몇년의 세월이 흐른 후 정신을 차린 왕의 사랑을 받고 뒷전으로 밀려 난 희란은 이에 앙심을 품고 소혜에 대한 음해를 일삼다가 결국은 전모가 밝혀져 을사년에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이 대략의 줄거리다.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이미 우리가 수많은 대중 매체에서 접한 정실과 첩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구전 설화의 한 토막이라 하겠다.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 스토리나 캐릭터가 아니라 구전 설화에 대한 하나의 실험임을 밝혔는데, 구전 설화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 전해주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 살이 붙어서 나름의 독특한 줄거리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이 장르만의 고유한 감칠맛이다. 이야기꾼을 맡은 작가는 조선 시대 왕실에 얽힌 야사와 정사, 유명한 구전 설화, 선인들의 뛰어난 지혜를 가늠케하는 선문답과 같은 수수께끼, 월탄 박종화의《금삼의 피》의 몇몇 일화를 가져다가 능수능란하게 새로운 이야기로 엮어 나간다. 구전 설화가 갖는 뚜렷한 권선징악적 구조를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유발시키고 소혜와 욱제의 달큼하고 아릿한 사랑 놀음은 로맨스의 향취에 한껏 취하게 만든다. 더불어 세심한 여성 작가가 아니면 그려내지 못했을 구중 궁궐의 풍속과 하나의 의미를 깨물어 볼 때마다 맛이 더해지는 고어가 반갑기 그지없다.

사실 역사 로맨스는 현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옛시절의 낭만주의의 향취를 느끼기 위해서 무대를 과거로 옮겼을 뿐 소설에서 그려지는 로맨스는 현대와 다를 바 없는데 욱제와 소혜의 4년간의 얽힌 애욕의 연애담 역시 그러하다. 한눈에도 연산군을 연상시키는 소년 왕은 어릴 시절의 어미를 잃은 외로움과 군주로서의 과중한 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욱하는 성미에 욱제라 불릴만한 불같은 성정으로 착하기만한 어린 왕비에게 지랄 광증을 부리고 소유욕으로 점철된 애정 행각을 일삼는다. 여기에 소혜의 강학 교사로 나오는 미장부 강두수와 간부 희란의 관계가 얽혀져 마치 현대물에서나 볼 법한 복잡한 4각 관계가 등장하기에 이른다.

소설은 철부지 욱제와 소혜가 하나의 성인으로 커나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드라마이기도 한데 효녀 심청과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왕비가 된 소혜는 어린 시절에는 욱제의 행동에 대항 한 번 못하고 눈물만 짓다가 개인적으로 찾아온 아픔과 위기를 하나의 통과의례로 거쳐낸 뒤 비로소 여인이자 한 나라의 왕비과 되며, 욱제는 자신의 내밀한 아픔을 감싸주는 소혜의 도움으로 욱하는 성미의 욱제에서 본래의 뜻인 해처럼 떠올라 만백성을 구제하는 욱제로 거듭난다.

소설은 단국(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다는 이유로 – 하지만, 작품에서 등장하는 단국(조선) 시대는 분명 여러 서양 로맨스처럼 작가의 취사 선택 과정을 거친 일종의 판타지성을 띄고 있다. – 그 시절에 횡횡했던 처접제를 비롯한 여러 가부장제의 폐해와 남녀 차별 정서를 여과 없이 통과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역사적 사건들처럼 단국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의 책임을 희란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정치적 혼란이 발생했을 때 여성이 악의 근원이 것처럼 몰아가 해결점을 모색하는 남성 중식적 시각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수 많은 구전설화의 경우처럼 이상적 여인(소혜)이란 자신을 둘러싼 타인을 위해 자신 자신을 잊고 철저하게 희생하는 어머니의 상이며 이에 반하는 이미지는 – 오랜 세월동안 오직 남성의 영역이었던 – 색을 즐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진정한 삶과 삶의 의무(일명 희생하는 어머니상)를 저버리는 음탕한 여성으로 소설은 이 두 대조적인 여성의 대결 구도를 이상적 여인의 승리(음탕한 여성에게는 가혹한 징벌)로 마무리 짓는데 이 또한 남성 중심적 윤리관이 아닐까?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주입된 이중적 감정 교육에 따라 – 일명 남성의 성적 충동은 여성과 달리 억제력이 미약하다는,또는 남성은 감정 없이도 동물적인 성행위를 할 수 있다는 – 남성의 자유로운(또는 방종한) 성적 일탈에 대해 느슨한 시선을 던져준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로맨스 소설에서는 성적 방종을 일종의 성장 과정으로 거친 남주인공과 성에 대해서 전적으로 무지한 상태의 여주인공이 갖는 첫번재 결합을 일종의 합법적이고 정당화된 강간 형태로 묘사 할 수 밖에 없다. 기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1887》의 여주인공 잔과 마찬가지로 소혜는 자신의 육체를 알지 못하고 여성적 수줍음만을 간직한 채 기나긴 고독속에서 이상화하고 찬미화된 사랑에 대한 꿈으로 스스로를 달래다가 결혼 후에도 그녀의 성은 욱제에 의해서만 개방되고 성적인 욕구를 느낄 수 있도록 철저하게 훈련받는다. 순진한 소녀 소혜는 남편 욱제의 입맞춤을 받고도 불쾌한 느낌에 도망을 가야하고 그 뒤 이 과정에 길들여질때까지 철저하게 능욕당하는 비극을 맛본다.

욱제는 한 나라의 왕으로 가장 선진의 교육을 받았으며 궁궐의 문물 또한 그 시대의 가장 문명화된 형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소혜를 능욕하는 욱제는 문명의 껍질을 벗어버린 한 마리의 야수로 야만성과 폭력성이 넘쳐 소혜를 겁간한다. 사실 성 행위에는 양면의 거울처럼 성의 야만과 폭력과 성애의 기쁨이 동시에 포함돼 있고 욱제는 소혜에 대한 진정성을 느끼게 된 뒤 자신의 지금까지의 성행위가 일종의 남성으로써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방종이었으며 은애하는 이와 함께 나누는 것만이 참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이 과정을 강렬한 대비를 통해 보여주기 위해 강간(혹은 그에 준하는 행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더불어 소혜에 대한 강력한 집착과 소유욕 때문에 욱제는 에고이즘에 사로 잡히고 소혜에 대한 폭행과 학대 행위는 점점 강도를 더해 간다. 다수의 로맨스 작가들은 로맨스 소설에서 강렬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강간,학대,폭행을 정당화시키는데 이 모순성이야말로 독자와 작가를 포함하는 모든 로맨스계의 구성원들이 함깨 모여 고민해야 할 가장 시급할 과제이지 않나싶다.

한글 창제되기 이전 우리는 표현할 글체계가 없어 한문의 음을 가져다 우리말을 쓰는 이두를 쓴 적이 있었다. 이두는 뛰어난 고안 방식이긴 하나 남의 것을 임시로 빌려 쓴 것이다. 이지환의《화홍》은 이두같다. 어려운 과제이긴 하나 그녀가 차기작에서는 단국이 아닌 우리의 역사를 재대로 표현낸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략 결혼→불화와 오해→움트는 사랑→뜻하지 않은 임신→불화와 오해→유산→냉담해지는 여주인공→남주인공의 용서 구걸→화해 →외부로부터의 음모→위기→해패엔딩》 으로 이어지는 스토리 진행 코드가 이미 수많은 로맨스 소설에서 봐았던 정형화된 것이라는 것도 못내 아쉽다. 대표적인 대중 문화 장르에 하나인 추리 소설의 경우《사건 발생→탐정 등장→사건 해결》의 도식화된 진행 방식을 탈피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작가들이 스토리의 실험을 해 왔고 지금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독특한 소설이 넘친다. 작가는《화홍》이 문체의 실험이라고 이미 밝힌 봐 있음으로 차기작은 스토리의 실험까지 내처 해주었으면 한다. 이 밖에도《화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한 시절을 풍미했던 사극 시리즈(여인천하,명성황후등)의 캐릭터의 그늘 아래 있다는 혐의를 부인 할 수 없을텐데 로맨스 장르의 특성상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탄생하는 작품은 거의 없다는 것을 독자들이 고려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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