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진짜 삶과 소설 그 사이 어디쯤” 작은 아씨들(1994)

Little Women (1994)
115 min|Drama, Family, Romance|25 Dec 1994
7.3Rating: 7.3 / 10 from 51,065 usersMetascore: 87
The March sisters live and grow in post-Civil War America.

5번째 리메이크작으로 질리안 암스트롱은 ‘작은 아씨들’을 연출한 최초의 여성 감독이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출연한 전작들처럼 메그 역에 트리니 알바도르, 조 역에 위노나 라이더, 베스 역에 클레어 데인즈, 어린 에이미 역에 키어던스 던스트,성인 에이미 역에 사다만 매티스가 출연했으며 갓 스물살의 청춘 스타 크리스찬 베일이 로리 역을 맡았다.  여담으로 크리스찬 베일은 평생 ‘로리’ 같은 역할만 하게 될까봐 이 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여우주연,의상,음악 3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특히 유명 의상 디자이너 콜릿 엣우드가 맡은 의상은 많은 호평을 받았다.

작은 아씨들 1994년작

1994년 작은 아씨들

각색가 로빈 스위코트드는 1933년작,1949년작과 루이자 메이 올콧의 원작를 두루 참고해 각본을 썼다.  ‘조와 그녀의 자매들’이었던 기존 리메이크작과 달리 자매들의 관계성을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를 여러 편 살려냈고  앞선 리메이크작에서 외면받았던 캐릭터인 에이미의 서사를 살려 로리와 에이미의 연애사에 설득력을 입혔다.  다만, 메그가 결혼한 이후 이야기인 2부 ‘아내들’ 편은 1939년 판의 복사 붙여넣기 수준의 리메이크다.

알려진대로 ‘작은 아씨들’은 작가 루이자 메이 올콧의 반자전적 소설이다.  초월주의파 교육자였던 아버지 에이모스 브론슨과 사회운동가였던 어머니 애비 메이 사이에서 네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나 그녀는 자신을 모델로 삼아 조를 탄생시켰다.  영화는 이 반자전적이라는 면에 주목해 영화에 상당 부분 실제 루이자 메이 올콧의 삶을 끌어들였다. 감독과 작가가 힘을 준 부분은 조와 그녀의 어머니 애비 메이 올콧이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이다. 실제로 애비 메이는 사회운동가이자 여성 참정권자 노예해방론자였으며 그녀에게 교육 받은 루이자 메이 올콧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작은 아씨들’은 작가의 실제 삶이 어느 정도 투영된 반자전적 소설이지 전기 소설이 아니다. 감독은 분명한 의도성을 띠고 루이자 메이 올콧의 페미니스트적 삶을 부각하기 위해 실제 삶을 취사 선택해 원작에도 등장하지 않는 에피소드를 창작하거나 소설 속 에피소드를 남녀갈등씩 에피소드로 개작해 원작을 훼손한다.

소설 ‘작은 아씨들’에는 당시 여성들이 껵는 사회적 불평등이 나온다. 여성으로서 겪는 사회진출의 한계 대해 묘사되어 있고 작가는 이를 풍자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소설의 주제는 페미니즘이 아니다. 물질과 정신 사이에서 겪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대한 고민, 개성 강한 네 자매가 각자 자신의 삶에서 이런 고민을 헤져나가며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이어나간다. 무엇보다 자매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 어머니 마치 부인은 ‘세상 모든 해답은 어머니가 알고 있다’라는 격언의 현신 같은 인물이다. 그녀는 절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자녀들이 자신들만의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한다.

수잔 서랜든이 연기한 마치 부인은 자매들의 조언자라기보다는 네 자매로 이뤄진 이 작은 여성 커뮤니티의 페미니스트 리더로써 정신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듯 보인다.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운동이 필요하다.’, ‘여자들의 몸을 나쁘게 하는 건 바느질과 코르셋이다’라고 말하고 학교에서 금지한 ‘라임 절임’ 때문에 매를 맞은 에이미가 ‘선생님이 여자들은 교육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어’라고 말하자 분개하며 집에서 교육하기로 한다. 물론 소설에 이런 에피소드는 없다.

뉴욕에 간 조는 흑인과 여성의 참정권에 대해 비웃는 백인 남성에게 조곤조곤하게 타이르는 말투로 그의 무지를 일깨워 주며 동시에 이를 계기로 자신이 호감을 품은 또 다른 백인 남성 캐릭터에 인정을 받는 계기를 만든다. 아이러니한 것은 뉴욕으로 간 조의 에피소드를 1933년 판 영화에서 그대로 가져와서 조가 지적으로 우월한 바에르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는 전형적인 감정 교육 소설의 여성 캐릭터가 됐다.  원작에서 조가 바에르 교수의 조언으로 작가적 방향성을 찾는 건 맞지만, 그에게 자신이 소설 완성본(작은 아씨들)까지 보내며 인정받고 이를 계기로 사랑을 쟁취하는 것은 너무 현대적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 전개다.  

페미니즘적 해석 때문에 가장 큰 손해를 입은 건 메그다. 그녀는 네 자매 중 누구보다 물질과 정신 사이에서 방황하며 돈 대신 사랑을 선택한 결혼을 한 이후에는 어머니 같은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녀의 서사는 영화의 방향성과 맞지 않기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가 부유한 가디너 집안 파티에 초대받아 한껏 꾸미고 놀다가 자신의 허영심과 절제 사이에서 갈등하는 에피소드는 영화에서 뜬금없이 메그가 노예 노동인 실크 드레스를 입지 않는다며 별종 취급을 받는 것으로 개작됐다. 실제 올콧 집안이 2년 동안 살았던 초월주의 공동체 행동 강령에 따르면 노예 노동의 산물인 면직물과 양에서 착취한 양모를 입지 않고 오직 마에서 재배한 리넨과 캔버스 신발만 신을 수 있다. 실제 삶을 반영했다면 영화는 각종 영화제에서 의상상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1994년 작은 아씨들

조역에 위노나 라이더, 로리역에 크리스찬 베일

‘작은 아씨들’ 주인공들은 실제 올콧 자매들과 달리 몰락한 부르주아 계층의 소녀들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마을 최고의 부자 로렌스씨네 옆집에 살고 있고 무도회,다과회,야유회,연극놀이 등등의 부르주아 모임에도 참석해 나름 행복한 소녀 시절을 보낸다. 실제 올콧가의 삶은 훨씬 더 비참했다. 지적으로 우수했으나 경제적으로 무능력했던 아버지 때문에 가정경제는 모두 어머니와 루이자의 몫이었고 루이자 메이 올콧은 수예가 아니라 바느질로 돈벌이를 하고 가정교사,가정부,재봉사등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고 했다. 그녀에게 작가적 성공은 가족의 경제적 탈출구였다. 

‘작은 아씨들’은 그녀의 자전적 삶이 반영되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훨씬 더 행복한 이상적 삶을 그리고 있다. 영화 속에서 마치 부인이 그렇게 외치는 성적 불평등이나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도 모두 부르주아 여성 계층 입장의 매우 단편적 페미니즘일 뿐이다. 어쩌면 이는 이 영화가 20세기 교육 받은 서구 여성 관객을 대상으로 했기에 가지는 뚜렷한 한계점이다. 다.

 네 자매를 연기한 매력적인 여배우들의 찰떡 같은 앙상블, 영원한 첫사랑 소년 크리스찬 베일, 각종 영화제 의상상을 휩쓴 19세기 의상, 토마스 뉴트먼의 흥겨운 음악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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