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 닐스를 추억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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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퀸 작가 중 베티 닐스라는 작가가 있다. 1910년 생으로 60세인 1969년에 <Sister Peters in Amsterdam>으로 할리퀸 작가 데뷔, 2001년 6월 7일 92세로 타계하던 그 해까지 매년 3~4권의 할리퀸 로맨스를 출간하신 전설 같은 분이다. 베티 닐스는 처녀 시절 공군 간호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고 남편 역시 네델란드인 외과의였기에 그녀가 쓴 작품은 초기 할리퀸 스타일인 너어스&닥터(Nurse&Doctor) 형식이 주를 이뤘다.

내가 이 전형적인 옛날 작품만 쓰는 베티 닐스를 좋아했던 이유는 단 하나 초라의 끝을 달리는 여주인공에 때문이었다. 남주인공은 맡아놓고 저명한 의사인데 – 그냥 개업의도 아니고 수백 년째 가업이 의사인 – 반해 여주인공은  간호사, 가정부, 요리사,보모 혹은 정말 대책 없이 착하기만 한 미련퉁이 동네 백조 처자다. 그렇다고 외모가 개연성 라는 공식도 성립이 안 되는 게 남주인공에게는 이미 뛰어난 미모에 집안도 화려한 처자가 약혼녀라고  있는데 우리의 주인공 처자는 외모까지 초라하고 정말 개나 소나 다 있는 할리퀸 여주인공 옵션인 ‘가녀린 몸매에 보랏빛 눈동자’도  없었다. 나이도 많았다.

초라한 여주인공의 “언감생심 내 주제로 무슨 저런 남자를 휴우~”로 달리는 스토리에 슬슬 짜증이 나고 자포자기한 여주인공이 남 주인공을 곁을 떠나려 하면 그때까지  통 속내를 비추지 않던 남 주인공이 “귀여운 베이비, 이런 오해쟁이” 컨셉으로 이제까지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남몰래 사랑해 왔는지를 고백하고 여주인공은 고매한 의사 부인으로 신분상승 해피 엔딩이다.

난 베티 닐스의 소설을 지독하게 증오하면서 동시에 지독하게 사랑했다.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은 여자가 될까 봐도 두려웠지만 동시에 아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해도 사랑한다고 외쳐주는 (능력 있는)남자를 외면하기 힘들었다. 할리퀸 세상에서 남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돈 좀 쥐어주고 “그래 봐야 넌 매춘부야”를 외쳐댔지만 우리의 의사 선생님은 정말 매너 있게 돈 쓰는 게 뭔지를 보여줬다.

베티 닐스를 추억하다 2

왼)신데렐라의 꿈 초판 표지 오) 호시노 마사미가 그림을 그린 만화판

<신데렐라의 꿈 : Stormy springtime,1987>은 걔 중에서도 극악의 루저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메그는 유행에 뒤떨어진 시골 처녀다. 언니들은 일찌감치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 했거나 아니면 당시 커리어의 끝이라 할만한 간호부장 자리까지 올랐지만 메그는 시골 저택에서 병든 어머니만 모시고 좋은 시절을 다 보낸다.

언니들이 한심한 그녀를 처리하기 위해서 런던에서 직업 교육을 받거나 남자를 만나 결혼 하라고 달달 볶아도 속 좋은 그녀는 고향에서 계속 정원이나 가꾸며 살고 싶어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계산에 빠른 언니들은 시골 저택을 팔아 나눠갖고 사라진다. 아, 물론 메그에게도 공평하게 나눠줬다.

메그는 당장 살 집도 없고 직장도 없는 막막한 상태에서 거리로 내쳐지는데 거의 이 대목에서 나는 늘 이성을 상실했다. 이봐 이게 말이 되냐 구. 1987년이면 우리나라에서도 아시안 게임이 열린 다음해인데 우리보다 몇 배 앞선 그 잘 사는 영국에서 직업이 없어서 길가에 나앉아, 26살 나이는 허투루 먹었어? 사회보장제도,직업훈련 제는 엿 바꿔먹었어? 응? 응? 응? 이 한심한 여자야!!! 이때 짠하고 등장하는 것이 남자 주인공이다.

문제의 시골 저택을 산 부자 컬버 교수는 메그를 임시 가정부로 고용해 일단 비 피할 곳부터 마련해준 뒤 직장(병원의 접수계)과 안락한 거주지(병원 위 셋집)까지 제공하고 종국에는 아내 자리를 제안해 메그는 소원하던 대로 시골 저택에서 존경 받는 의사 부인으로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된다.

십대 시절 가족경제가 공중분해 된 후 나는 베티 닐스의 소설을 라이너스의 담요마냥 끌어 앉고 시린 영혼을 데워보려 애썼다. 가족 탓을 하며 비뚫어지기에는 용기가 없었고 공부로 가족을 구렁텅이에서 구원해내기에는 시험 성적이 그저 그랬으니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힘들 때마다 한심한 메그에게 온갖 악담과 경멸을 쏟아내면서도 그녀가 더 이상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안도감을 얻었다. 페미니즘과 진실한 사랑보다는 당장쌀 떨어지는 게 더 두려운 나이였다. 늘 컬버 교수 같은 그분이 나타나 나의 모든 불행을 일순간에 해결해주길 바랬으나 내가 사는 곳이 영국 시골이 아니라 그랬는지 그 분은 오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고 내가 메그의 나이를 훌쩍 넘어서고야 누구나 제 밥그릇 챙기며 사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이미 1987년 영국보다 더 잘 사는 대한미국에서, 직업교육만 받으면 매달 삼십만원씩 나오는 이 나라에서 살면서도 그 시절 메그보다 도통 나을 것이 없다. 아니 한참 처진다.  메그는 영국식 영어 가능에 상류층 가정부 경험도 있으니 비행기표 사서 우리나라 오면 ‘정통 영국 유모’ 프로필을 앞세워 강남 엄마들로부터 능히 수백은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재주가 메주라고 여겼던 메그는 결코 멍청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일에 지쳐 가정이 그리운 컬버 교수에게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먹일 눈치도 있었고 직업 가정부로 고용될 정도로 야무진 살림 솜씨도 있었고 시골 저택에서 평생 정원일 이나 하며 지루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선택 받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아는 현실 감각이 있었다.

메그처럼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서 나의 부양권(扶養權)을 떠맡길 운도 그렇다고 제 밥 벌이는 능히 해 내는 재주도 없는 나는 오늘도 베니 닐스의 소설을 읽으며 복잡한 심사를 토해낼 뿐이다. 이 멍청한 여자야 그러게 진적에 언니들처럼 간호사하지 그랬어, 대체 저 여자는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해서 시집을 잘 가지, 지금이야 좋겠지, 저 남자가 세련되고 어린 처자들에게 눈 돌리는 순간 당신은 또 다시 거리를 배회해야 할 걸…세상은 자기발로 서야 되는 거야….블라블라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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