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를 살리지 못한 아쉬움’ 메디컬 센터

‘메디컬 센터’ 이화현

메디컬 센터
Title: 메디컬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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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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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병원 레지던트 2년차인 윤명현은 잠시 산책로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2년 만에 병원으로 복귀하는 의사 서인우와 만나게 된다. 인우는 첫눈에 명현에게 강한 사랑을 느끼고 그녀가 남몰래 간직한 슬픔을 치유해 주려고 애쓰지만, 사랑을 믿지 않는 명현은 그를 거부한다.

순애보물의 경우 감정의 완급 조절이 작품의 질을 결정한다. 조금 과하다 싶으면 신파로 흘러 질척댄다. 감정이 흘러 넘치는 작품의 외견과 달리 작가는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감정의 골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해야 할 대상은 작가 자신이 아니고 독자다.

우선 작가가 너무 조급하다. 독자가 남녀 주인공에 감정 이입을 할 사이도 여유도 주지 않고 몰아가기에 바쁘다. 특히 도입부에서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을 묘사하는데 할리퀸 특유의 작법을 쓴 것은 최악의 결정이다. 국내 작가들이 습관적으로 따라는 이 작법은 단 250 페이지에 감정을 압축하고 다음 이야기로 서둘러 진행해야 하는 할리퀸의 단어 수 제한 조항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는 초반에 서둘러 두 남녀가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이 후 사랑하지만 사랑 할 수 없는 두 남녀의 감정 이 한가지에 대해서만 우직할 만큼 밀어 부친다. 메디컬 로맨스를 표방하고 있으나 갈등의 중심은 언제나처럼 가족 이데올로기다.

작가는 병원 조사에 공을 들린 흔적이 역력하다. 작가는 철저한 사전 조사는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이렇게 애써 조사한 자료가 오직 자료로만 머무른다면 조사한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가 이 소설에서 읽고 싶은 것은 의사들이 병원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일지(日誌) 가 아니다. 메디컬 로맨스 특유의 긴박감이나 휴머니즘을 살리지 못한다면 애써 병원을 무대로 할 까닭이 없다.

작가는 명현과 인우를 둘러싼 갈등 해결을 위해 병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우발적 사고를 방해 요소로 만들어냈지만, 자연스럽기보다는 오직 방해 요소를 위한 방해 요소의 느낌이 강하다.

이 소설에서 새삼 눈 여겨 볼 것은 한국 현대 로맨스 소설에서 가족 로맨스가 어떻게 소비되고 유통 되는 가다. 명현은 명망 있는 가문(철저한 가부장적 가문) 의 자손으로 가족이 주는 압박감에 휘청거린다. 명현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사랑 없는 결혼을 했고 아버지는 이런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질러 가문의 정통 계승자인 아들을 얻는다. 어머니는 집안에 대를 잇는 구실을 못하는 딸인 명현만 나은 뒤 출산 능력의 상실과 동시에 집안에서의 위치를 잃고 요절한다. 이런 가족사는 명현이 사랑에 대해서 냉소적인 감정을 느끼는 원인이 된다.

인우의 가족 역시 홈드라마 속 단란한 가족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그는 가족에 대한 책임 의식으로 재능이 있던 피아노를 접고 의사의 길을 택했으며 이 때문에 아버지와 갈등을 겪는다.

소설에서 명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부장제의 희생양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어머니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철저하게 가부장제에 이용당하고 버려진 반면 아버지 자신의 욕망에 의해 어머니를 버렸고 또 다른 여성과 아들을 낳음으로써 가부장의 위치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가족의 화합이라는 명분하에 이뤄진 딸의 용서로 아버지의 위치 역시 쉽게 되찾는다.

명현은 조부모와 아버지로 대표되는 집안과 갈등을 겪지만 이런 갈등은 명현이 목숨에 위태롭게 되자 별다른 과정 없이 한 순간에 사랑과 용서로 손 쉽게 해소된다. 한 마디로 국내 로맨스 소설에서 가족은 주인공에게 주요 억압 기제로 작용해 손 쉬운 갈등 구조를 만들어 내고 또한 가족의 화합이라는 손 쉬운 결말을 도출 해 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도구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장르 문학이란 특정 코드를 선호하는 독자와 작가의 합의에 의해 탄생된 만큼 한국 현대 로맨스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이런 갈등 구조가 한국 현대 로맨스의 특징이라고 주장할 수 도 있겠으나 한국 현대 로맨스에서 자생한 고유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일명 홈드라마라는 명칭으로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파생 된 것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한 발 더 물러나 한국 현대 로맨스의 특징이라고 전제한다면 한국 현대 로맨스의 특징은 왜곡되고 극히 과장된 가족 관계에만 의지한 채 소재나 이데올로기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초라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독자들이 선호한다거나 친숙하다는 이유로 가족 로맨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에 앞서 이런 점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 해 봤으면 한다.

미국의 유명 로맨스 소설가 제인 앤 크렌츠는 한 인터뷰에서 “로맨스 소설의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은 같은 무게의 상처가 있어야 한다”고 설파한 적 있는데 이는 로맨스 소설에서 남녀 비중의 동일함을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며 다시 말해 로맨스란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닌 두 사람이 쌍방향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다는 말이다. 온통 상처 투성이의 여주인공과 그에게 무한의 사랑을 주는 무결점의 남성은 독자에게 고작 “이렇게 멋진 남자한테 사랑 받고 싶어” 가 같은 백일몽을 선사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것이 순애보물의 태생적 한계인데 이 작품 역시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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