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시즌과 데뷔탕트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에서 다프네 브리저튼은 여왕의 알현식에 참석하고 각종 무도회에 참석하며 신랑감을 구하기 위해 분주한다.  다프네 뿐만 아니라 영국의 내노라하는 상류층 레이디들이 짝을 찾기 위해 혈한이 되는 이 시기가 바로 런던 시즌(The Season)이다.  런던 시즌은 브리저튼 시리즈 말고도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 로맨스 소설의 주요 무대이다. 대체 런던 시즌이 뭐길래 그토록 난리인걸까? 

런던 시즌? 리틀 시즌?  

다프네 브리저튼(피비 디네버)©넷플릭스

런던 시즌(The Season)은 영국 상류 계층이 자신들의 영지를 떠나 런던의 랜스돈,그로브너,데본셔,캐도간 같은 이름이 붙은 메이 페어가의 고급 주택 지구에 머무는 시기로 영국의 지방 귀족들이 의회에 참여하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런던에 머물면서 생겼났다는 것이 통설이지만, 시즌이 명확히 날짜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상류 계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행사 일정이 의회 회기에 맞춰져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아니다. – 1886년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 5월호에 따르면「시즌은 의회에 좌우되고 의회는 스포츠에 좌우된다」라고 언급돼 있다.   이 시기에 모든 사교계 행사가 몰려있고 자연스럽게 결혼 시장이 형성되면서 시즌이라고 부른 것으로 추측된다.  

영국 의회 회기가 10월말이나 11월 초에 시작되어 6월달에 끝났으므로 보통 이 시기를 시즌이라 하나  본격적으로 시즌이 시작되는 것은 겨울을 지나 3~4월경 봄이 되야 하고 시즌의 절정인 5월부터 7월 사이에는 3대 주요 행사인 엡섬 더비, 로얄 애스콧, 영국 왕립 미술원(Royal Academy of Arts) 연례 전시회가 개최된다.  5월과 6월 사이에 개최되는 엡섬 더비는 대중적인 경마 대회로 이 날 레이스를 보기 위해 의회는 휴정했고 국왕도 참석했으며 일반인도 관람 할 수 있었다.  더비 최초의 레이스는 1780년 5월 런던에서 14마일 떨어진 엡섬 다운스에서 열렸다.

강한 배타성을 자랑하는 로얄 애스콧은 상류층에게만 문호가 개방됐다. 런던 교외 30마일 떨어진곳에서 열린 로얄 애스콧은 윈저숲을 가로질러 벅스와 미들섹스의 평원에 이를때 그 절정에 다다랐다. 특히 애스콧은 데뷔탕트(사교계에 첫 데뷔하는 17~18세 상류층 여성)들이 미모를 뽐낼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경기와 상관없이 새로 장만한 옷을 자랑하기 위해 로얄 애스콧에 참가하는상류층 여성들도 부지기수였고 애스콧에서 선보인 새로운 유행은 가까운 시일에 먼 지방까지 발빠르게 퍼져 나갔다.

1768년에 창설된 영국 왕립 미술원의 연례 전시회는 전시회의 인기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도 다음에 올 중요 행사의 지표가 된다는데 의의가 있었다. 이 행사 뒤로 갈라 콘서트,알현식,왕궁 무도회같은 행사가 이어져 본격적인 사교 시즌의 서막을 올렸다. 

6월에 회기가 끝나면 상류층은 영지로 돌아가거나 베스나 브라이튼 같은 해변 휴양지로 떠나면서 시즌은 끝이 났다.  본격적으로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런던에 거주하는 상류층들이 9월에서 11월 사이에 ‘리틀 시즌’이라고 부르는 사교 모임을 가졌다고 하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데뷔탕트와 알현식

다프네 브리저튼은 온 가족과 함께 궁전에 가 여왕에게 인사를 하고 사교계의 다이아몬드라는 찬사를 듣는다. 다프네 브리저튼은 참석하는 행사는  알현식(The presentation of debutantes)으로 사교계의 영애들이 여왕이나 황태자 부부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는 행사이다.  보통 여왕의 생일과 왕의 생일에 이뤄졌다. 이 사교계 데뷔를 해야 정식으로 사교계 일원으로 인정을 받고 일명 데뷔탕트로 각종 사교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사교계 공식 데뷔 무대인 만큼 상류층은 오랜 시간을 들여 행사 준비에 매진했다.이 행사는 엄격한 규칙과 에티켓으로 무장돼 있어 레이디들은 한 순간의 알현을 위해 장기간 준비를 했다. 유명 디자이너에게 가운을 맞추고 슬리퍼, 부채, 보석, 장식용 깃털같은 악세사리를 준비하고 예법 수련을 받았다.

알현식 복장 규정은 미혼 여성의 경우 보통 흰색 이브닝 드레스로 짧은 소매에 긴장갑을 착용하고 머리에는 3~8개의 타조 깃털이 장식된 튈을 착용했다. 기혼 여성은 좀 더 다양한 색상의 드레스가 허용됐다. 샬롯 여왕이 주도했던 알현식 복장은 기이한 정도로 거대한 후프 스커트였고 이 후프 스커트는 조지 4세가 등극하면서 폐지될때까지 왕궁 공식 복장이었다. 

좌)1807년 6월 4일 황태자비의 궁전드레스 출처 워싱턴 대학 도서관 우) 1802년 알현드레스 이미지소스 Candice’s Regency World

가운의 긴 트레인(여성들의 정장 드레스 뒤에 꼬리처럼 길게 끌리는 부분)은 엉키기 쉬웠으므로 이에 익숙해지기 위하여 식탁보를 가지고 예행 연습을 했으며 동시에 여왕의 손에 입맞춤하는 연습도 병행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절이었다. 왕궁에서 여왕에게 올리는 절은 무릎이 거의 바닥에 닿을 때까지 굽혀져야 했고 상당 시간 동안 그 낮은 자세를 유지 해야 했다. 또한 균형을 잃거나 앞으로 고꾸라 지거나 가운에 걸려 비틀거리면 안됐으며 여왕으로부터 나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으면 우아한 자세로 뒷걸음쳐 방을 빠져 나갔다. 왕족에게 등을 보인다는 것은 예의 범절에 있어 가장 큰 결례로 취급됐다.)

알현식에 참여 할 수 있는 지위는 제한적으로 귀족외에도 성직자, 육군이나 해군 장교, 의사, 법정 변호사, 은행가의 아내와 딸은 알현식에 참여할 수 있었으나 일반 개업의와 사무 변호사, 장사꾼, 상인의 아내와 딸은 제외됐다. 이혼녀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알현에 참여할 수 없었는데 빅토리아 여왕은 이혼으로 여성이 받는 불이익이 너무 가혹하다 하여 1889년 차별 금지를 포고했다.

이 특별한 날의 날씨와 관계 없이 참가 여성은 망토, 케이프, 숄, 몸을 따뜻하게 해줄 방한용 겉옷은 금지됐다. 어머니와 함께 알현에 참가하는 데뷔탕트들은 그들의 순서가 올때까지 세인트 제임스궁 밖 마차안에서 대기했다. 궁안에 들어갔다고 여왕을 바로 알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름이 호명될때까지 – 아버지의 직위순번 – 세인트 제임스궁의 한기가 감도는 갤러리에서 기다렸다.

마침내 해당 여성이 방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면 이름 카드가 내관에게 전해지고 대기중인 신사가 그녀의 트레인을 펴주는 동안 이름이 소개됐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발이 꼬이거나 절을 하는 동안 머리 장식 깃털이 제자리에 있어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무릎을 바닥에 닿을때까지 구부린채 여왕의 손에 입을 맞춘 후에는 왕족에게 차례차레 한쪽 무릎을 굽혀 인사를 했으며 마지막에는 여왕을 향해서 간략한 절을 올렸다.

모든 인사를 마친 레이디는 긴 트레인을 당겨 가능하한 우아하게 자신의 팔에 걸쳤는데 레이디의 편의를 위해서 종종 대기중이던 귀족이 트레인을 모아 팔에 걸쳐 주었다. 뒷걸음쳐 나오는 레이디들을 길 안내를 위해 배치돼 있는 하인의 도움을 받아 방을 빠져 나왔다.

알현식을 무사히 마친 사교계 영애들에게는 상류 사회와 결혼 시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알현식외의 다른 경로를 통해서 사교계에 데뷔하는 레이디도 상당수였는데 그 방법 중 하나는 황태자의 지원을 받는 레이디는 알현식을 거치지 않고 자동적으로 사교계에 진출할 수 있다는 편법을 이용하는 것으로 무수한 레이디들이 황태자가 참석하는 행사의 초청장을 위조했다.

성공적인 알현식을 끝마친 상류층 여성들은 왕궁 무도회 일명 샬롯 여왕의 무도회(Queen Charlotte’s Ball)에 참석해 사교계에 얼굴을 알렸다. 1780년 조지 3세가 주최한 샬롯 여왕의 생일 축하연에서 시작된  왕궁 무도회는 1818년 여왕이 사망한 후에도 공식적인 데뷔 무도회로 명맥을 이어나가다가 1958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알현식과 데뷔 무도회를 모두 금지시키면서 폐지 됐다.   

데뷔탕트의 하루

Morning Dress from Ackermann’s Repository, probably 1819.

보통 18세가 된 데뷔탕트의 하루는 전날 참석한 무도회 때문에 오전 10시정도에 느지막하게 시작됐다.  하녀가 와서 머리를 만져주고 모닝드레스로 갈아입혀주면 아래층으로 내려가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었다. 아침 식사의 메뉴는 스크럼블 에그, 소세지, 얇게 자른 토마토, 훈제 청어에 차나 커피가 곁들어졌다.  가족들과 일상적인 아침 식사를 했는데 특별한 경우에는 손님이 초대되는 정식 사교 모임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아침 식사 후의 남은 여유 시간은 그림 그리기, 바늘질, 수예, 청구서 지불같은 집안 잡무 처리, 편지 쓰기, 리젠트가나 본드가의 고급 상점가에서 쇼핑하기, 친한 친구 방문 – 절친한 사이가 아닌 단순히 아는 사람을 정오 이전에 방문하는 것은 대단히 예의에 어긋났다.- 같은 소일 거리를 하면서 보냈다.

잘 차려진 오찬 뒤에 박물관, 크리켓 경기, 공원에서의 산책, 과학 강연, 환영회, 연극 관람, 폴로 경기 관람, 가든 파티, 가정 음악회, 궁술, 잔디위에서는 하는 테니스(셔틀콕)와 볼링, 팰몰,피크닉같은 다양한 오후 사교 활동에 참여했다. 또한 정오부터 오후 차 모임시간 이전까지는 사교계 일원간의 의례적인 방문인 일명 모닝콜이 이뤄졌는데 방문 시간은 보통 10~20분정도로 최대 30분을 넘지 않야 했으며 새로운 방문객이 오면 이전 방문객은 돌아가는 것이 관례였다. 

사교 활동을 즐기던 여성들은 오후 5시가 가까워 지면 오후 차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차 모임에서는 손가락 샌드위, 빵, 버터, 스콘, 잼, 젤리, 꿀, 디저트, 차가 제공됐는데 보통은 가족들과 함께하는 조촐한 차 모임이었으나 특별한 경우에는 유명 성악가를 초대해 정식 사교 모임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오후 차 모임은 곧 있을 정찬의 준비를 위해서 대개 7시경에 끝이 났다.  특이한 것은 시즌 중에는 오후 5시에서 6시 사이에 하이드 파크 산책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여성들은 최신식 산책용 드레스와 보닛을 착용하고 신랑감의 시선을 사로 잡으려고 애썼으며 남성들 역시 최신 유행의 옷차림을 하고 여성의 미모를 감상했다.  연인들의 공식 데이트 장소였으며 정부와의 밀회가 빈번히 이뤄졌다. 

정찬은 정식 사교 모임으로 초대 받은 손님들이 집사, 하인, 급사의 접대를 받았다.  정찬 후에는 연극 관람, 오페라, 각종 소문이 오가는 야회(夜會), 무도회가 열렸다. 런던 시즌의 꽃인 무도회는 레이디들이 자신의 매력을 가장 크게 발휘할 수 있는 자리로 밤 10시부터 12시사이에 열렸으며 다음날 새벽 세시까지 이어졌다. 첫 번째 시즌을 맞는 생기 넘치는 레이디들은 아침 10시부터 새벽 세시까지 50번의 무도회, 60번의 파티, 30번의 만찬, 25번 정도의 아침 식사에 초대 받았다.

Highest life in London: Tom and Jerry ‘sporting a toe’ among the Corinthians at Almacks in the West,1821

데뷔탕트의 비용은?

소설 브리저튼 두번째 이야기 ‘나를 사랑한 바람둥이’의 여주인공 케이트는 넉넉하지 않는 형편 때문에 여동생 에드위나와 함께 데뷔하느라 다소 늦은 나이인 21살에 사교계에 나온다.  이외에도 많은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사교계 데뷔 비용에 골머리를 앓는다. 대체 얼마나 들까?  우선 런던에 집이 없는 지방 귀족이나 젠트리들은 거주지부터 마련해야 한다.  부유층의 경우 메이페어가 같은 고급 주택지에 타운 하우스 4층짜리 를 임대한다.  적당한 사이즈의 타운하우스의 연간 임대비용은 1000파운드 였고(하녀가 1년에 버는 금액이 15파운드,집사는 40파운드, 농부나 노동자의 일년 수입 은15~20파운드) 타운하우스에서의 안락한 삶을 위해서 – 임대비용, 하인 고용과 음식과 와인 값같은 유지비.의류 비용 제외 – 3000파운드가 소요됐다. 물론 마차와 말을 유지하려면 500파운드를 추가해야 했다.   

당시 부의 상징은 넓은 집과 많은 수의 고용인,마차와 말의 숫자였는데 브리저튼의 사이먼 공작 같은 경우 수백명의 고용인을 거느렸지만, 일반적으로 1000파운드 정도의 생활비로는 적당한 크기의 셋집, 다섯명 정도의 하인과 말과 마차, 400파운드는 2명 정도의 하인을 겨우 유지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오만과 편견’의 베넷씨는 연간 수입이 2000파운드에 1년 생활비 300파운드로 7가족이 안락하게 생활한 것에 비춰보면 런던에서 시즌을 보낸다는 것이 일반적인 부로는 감당하기 힘든 매우 극소수의 선택받은 상류층만을 위한 사회 활동임을 알 수 있다. 

의류비가 만만치 않았는데 데뷔탕트의 경우 알현복을 별도로 마련해야 했으며 – 알현용 드레스는 훗날 웨딩드레스로 수선해 재활용했다. – 참가하는 무도회마다 각기 다른 이브닝 드레스를 입어야 했고 일상 생활에서도 모닝드레스, 데이드레스, 위킹 드레스, 여행용드레스, 방한용 옷, 페티코트, 가운, 코트, 망토,슬리퍼,부츠, 장갑,부채, 옷갖 장신구를 마련해야 했다. 물론 알막 같은 상류사회 전용 무도회장 입장료도 무시할 수 없었다.   

부모들은 17~18세의 데뷔탕트로 첫 시즌을 시작해 운 좋게 바로 결혼에 골인하거나 아니면 두번째 시즌, 못해도 세번째 시즌안에는 결혼 할 것을 기대했다.  이 시기에 딸의 혼사를 성공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과년한 딸을 경제적으로 무한 책임져야 함을 물론 사위가 가져올 경제적,사회적 이득을 하나도 취하지 못한다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기에 결혼하지 못한 독신 여성은 집안에서 철자하게 배제됐다. 

The Entrance of Hyde Park on a Sunday

 

런던 시즌의 끝은?

드라마 브리저튼에서 다프네가 사교계에 나온 목적은 뚜렷하다. 결혼.  사회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에 결혼만큼 손쉬운 것이 없었다. 애정이 있는 결혼 생활이 된다면 다행스럽겠지만 대부분의 결혼은 가문간의 결합이었고 남성은 여성에게 적당한 지참금과 후계자 생산을 원했고 여성은 남성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가 필요한 상호간의 일종의 물물교환이었다.  경제력이 모자라는 귀족 가문의 남성의 경우 부유한 중류층 상속녀와 결혼하기도 했으며 중류층은 이런 방식으로 상류층으로 이동했다.  애정보다는 일종의 동지 의식으로 유지된 결혼 생활은 후계자를 생산한 후에는 남녀 모두 암묵적으로 정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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